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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발차기의 추억  
용현  2008-05-21 13:42:51, Hit : 62,547

지난 18일 박찬호는 1년 만에 선발 등판했다. 퇴물 이야기를 듣던 그가 얼마 전 옮겨 간 '옛 고향' LA다저스의 유니폼을 입고서 말이다. 4이닝 3안타 3삼진 2실점(1자책)으로 팀의 6-3 승리에 발판을 놓았을 뿐 아니라 구속 95마일에 더해 관록까지 보여준 피칭이었다. 4회 1루수의 송구 실책으로 인해 4회에만 37개를 던져 투구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바람에 5회 등판하지 못해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아쉽지만 최근 그의 투구수를 감안하면 당연한 결정이었다.
  
  어쨌든 많은 언론이 그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이적 후 패전처리로 마운드에 오르기도 했지만 현재 방어율은 2.16으로 수준급이고 최근엔 선발로테이션에 합류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7년 전 LA다저스 내 부동의 에이스였던 스물여덟 청년이 2002년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한 후 이팀 저팀 떠돌아 다니다 서른여섯에 고향에 돌아와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지난 18일 경기는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경기가 아니었을까. LA다저로서 2001년 10월 6일 이후 7년 만의 선발등판, 그것도 다름 아닌 LA에인절스를 상대로.
  
  다저스와 에인절스는 LA를 연고지로 하기에 피할 수 없는 숙명의 라이벌이다. 양팀 경기장이 고속도로로 연결된다 해서 프리웨이 시리즈라 불리는 두 팀 간 인터리그 경기는 연중 가장 중요한 경기일 뿐 아니라 굉장히 거친 경기다. 최근 다저스는 에인절스에 6연패 중이었는데 이번에 박찬호는 그 연패를 끊어준 것이다. 그래서 더 옛 생각이 난다.
  
  '챈호'의 추억
  
  원래 다저스는 가장 먼저 인종의 벽을 허물어 버린 팀이다. 1949년 (브루클린 다저스 시절) 메이저리그 최초로 흑인인 재키 로빈슨을 출전시켰고 80년대엔 라틴열풍을 몰고 온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95년엔 최초의 동양인인 일본인 노모 히데오를 팀의 간판으로 키웠다. 따라서 '인종의 벽을 허문 팀'이라는 찬사와 '인종문제를 마케팅 상술로 활용한다'는 비난을 동시에 받기도 했다. 그런데 최초의 한국인 메이저리거였던 박찬호가 적응하는 데는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1994년 미국에 건너온 애송이(?)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 합류하면서 동료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었다. 다저스엔 신참 투수가 메이저리그 첫승을 올리면 동료들이 라커룸에 먼저 가 옷을 찢어 놓는 일종의 통과의례 신고식이 있었는데 96년 메이저리그 첫 승을 거둔 날, 박찬호는 찢어진 자신의 옷을 발견한 뒤 참지 못하고 라커룸에서 난동(?)을 부린 덕에 동료들의 눈 밖에 난 것이다. 갓 스물 넘어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마이너리그에서 무시무시한 고독감과 싸우고 인종차별까지 경험하면서 '한 번 얕보이면 평생 무시당한다'는 생존본능을 습득한 그였기에 한편 이해할 만한 행동이었지만 그 후유증은 꽤 오래갔다.
  
  특히 그와 배터리를 이루던 프랜차이즈 스타 마이크 피아자는 가끔씩 그를 무시하는 듯 했다. 다른 선수들도 투수로서의 담력과 리더십에 있어서 박찬호의 능력을 의심했다. 팀 분위기도 최악이었다. 무능한 감독에 선수들과의 말싸움을 사양치 않는 단장, 개성 강하고 서로 잘났다는 선수들, 투수들을 험담하고 다니는 포수. 분란이 심했던 당시 다저스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다국적군'으로 구성된 선발투수진이었다.
  
  박찬호가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한 97년 선발진에는 같은 국적이 없었다. 제1선발에 라몬 마르티네즈(베네주엘라), 2선발 노모 히데오, 3선발 박찬호, 4선발 이스마엘 발데스(멕시코), 5선발 대런 드라이포트(미국). 포수였던 마이크 피아자로서는 투수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고역일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는 언론에 '다국적 문화로 인해 팀 분위기가 좋지 않다'며 외국인 선수들을 탓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당시 다저스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콩가루 집안' 수준이었다.
  
  챈호, 동료들의 '에이스'
  
  1997년 다저스는 팀내 극심한 불화로 시즌 중반까지 하위권을 헤매고 있었다. 이때 박찬호는 동료들의 눈을 휘둥그러지게 만들며 팀을 뭉치게 했다. 바로 에인절스와의 원정경기였다. 박찬호가 선발로 등판해 에인절스의 간판타자 토니 필립스에게 1회부터 홈런을 맞고 2안타 3타점을 내준 상황이었다. 세번째로 등장한 그에게 박찬호는 93마일 강속구를 머리를 향해 던졌다. 평소 '악동'으로 소문 났던 필립스는 풋내기 투수의 위협구를 받자 욕설을 하며 마운드를 향해 걸어나갔고 이에 박찬호는 물러서지 않고 마중(?)나갔다. OK목장의 결투마냥 말이다.
  
  양팀 50명이 홈플레이트 근처에 몰려들어 일촉즉발의 몸싸움이 있은 후 속개된 경기에서 박찬호는 다시 몸쪽 강속구를 던져 결국 필립스를 삼진으로 잡는다. 이후에도 그는 안쪽 공을 계속 던졌고 이때 동료들은 그를 다시 보게 된다. 역전승. 다저스는 2연전을 싹쓸이 한다.
  
  이 일이 있은 후 다저스는 연승가도를 달려 리그 밑바닥에서 수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당시 베테랑1루수인 에릭 캐로스(지난 19일 경기의 폭스TV 해설자)는 "만약 꼭 이겨야 할 단 한 경기가 있다면 (예를 들어 월드시리즈 7차전) 선발투수로 누굴 원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챈호"라고 답했다. 1997년 제3선발 박찬호는 이렇게 해서 라몬 마르티네즈와 노무 히데오를 제치고 팀의 에이스가 됐을 뿐 아니라 팬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2년 후 역시 에인절스와의 홈경기. 초반에 난타당하며 만루홈런까지 얻어맞아 0-4으로 뒤지는 상황에서 박찬호는 타자로 나서 보내기 번트를 대고 1루로 달렸다. 그런데 공을 잡은 상대 투수 팀 벨처는 글러브로 박찬호의 가슴팍을 밀어제쳤다. 이때 기분이 살짝 나빠진 박찬호는 자신보다 10살 많은 에인절스의 간판 투수 벨처에게 "What's up(왜 그래)!?"이라고 했는데(참고로, 영어엔 존대말이 없으니 이해하시라) 벨처는 "Fuck off(한국말로 '꺼져, 이 ××놈아'쯤 될라나)"라고 답한다.
  
  순간의 선택, 발차기의 추억
  


  듣지는 못했겠지만 수만의 홈관중과 TV카메라가 벨처의 입술을 보았다. 순간의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한 번 얕보이면 평생 무시당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박찬호는 지체 없이 팔꿈치로 벨처의 목부분을 밀어버렸다. 관록의 벨처는 박찬호의 왼발을 들어올려 밀어 쓰러뜨리려 했고 뒤로 쓰러져 벨처 밑에 깔릴 상황이 예약됐던 박찬호는 남아 있는 오른발로 벨처의 옆구리를 가격한다. 그 유명한 박찬호의 발차기.
  
  아수라장이 됐고 박찬호는 퇴장 당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이후 다저스는 불꽃 타격으로 0-4로 뒤지던 경기를 뒤집어 버렸다. 박찬호가 퇴장 당한 다음 공격에서 동료들은 팀 벨처에게 만루홈런을 선사했다. 그런데 발차기의 후폭풍은 만만치 않았다. 우리 언론은 박찬호를 나무랐다. 당시 그는 국가적 아이콘이었기에 기사 뿐 아니라 사설, 논평, 칼럼을 통해 박찬호를 나무랐다. '나라망신'을 염려한 듯했다.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먹싸움에만 익숙(?)했던 미국인들인지라 싸움이 났는데 발을 썼다는 데 특히 놀라는 듯했다.
  
  그러나 동료들은 달랐다. 그의 행동에 환호했고 칭찬 일색이었다. 자신은 퇴장 당했지만 동료들에겐 승리를 위한 투지를 던져 주고 나간 것이다. 이틀 정도 지나자 국내 분위기도 달라졌다. 누리꾼은 약 80%의 지지율을 보였는데 한 누리꾼은 이렇게 썼다. "박찬호는 잘 못했다. 얼굴을 찼어야 했다." 하여간 공식은 만들어졌다. '박찬호가 사고치는 날, 다저스는 승리한다.'
  
  다저스의 리더 '챈호'
  
  그는 97년 14승, 98년 15승, 99년 13승, 00년 18, 01년 15승의 성적을 이어가며 다저스 제1선발이 된다. 특히 98년 마이크 피아자와 노모 히데오가 떠나고 같은 해 1억 달러를 넘게 주고 데려 온 케빈 브라운이 부상으로 제 몫을 못하게 되면서 그는 팀 내 부동의 리더가 된다. 1997년 시즌 다저스의 선발투수진 다섯 명 중 2001년 시즌까지 계속해서 다저스의 마운드를 지킨 투수는 박찬호가 유일하다.
  
  그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1998년 다저스는 선수 7명을 주고 받는 초대형 트레이드를 통해 피아자 등을 보내고 게리 셰필드를 받았다. 셰필드는 내셔널리그 최연소 타격왕 출신으로 LA에서도 4년 연속 3할 타율, 3년 연속 30홈런, 43개의 구단 역사 최다 홈런 등을 기록한 특급 강타자였다. 특히 박찬호가 등판할 때면 적시에 홈런 등을 터뜨려 '찬호 도우미'로 알려졌던 선수다.
  
  그런 그가 2000년과 2001년 미 프로야구계를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다. 자기 실력에 비해 연봉이 맘에 들지 않으니 연봉을 올려주던지 아니면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 시켜달라는 것이었는데 그 방법이 좀 요란했다. 구단에 인종차별 혐의를 씌운 것도 모자라 특정 선수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형편없는 실력에 비해 과다한 연봉을 받고 있고 그 때문에 자기가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런 좌충우돌, 거의 막말에 가까운 발언을 하면서도 굳이 이렇게 사족을 달았다. "챈호 빼고."
  
  박찬호 연봉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이는 팀의 리더에 대한 존경(respect)의 표시였다. 그가 나중에 마음을 바꿔 팀에 남기로 결정하면서는 또 이렇게 제안했다. 구단이 박찬호를 잡을 수 있도록 자기 연봉을 1000만 달러에서 800만 달러로 깎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박찬호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간 6500만 달러라는 '대박'을 터뜨리며 떠났고 셰필드도 이적했다.)
  
  뭔가 특별했던 그의 마지막 불꽃
  
  박찬호는 스타 중 스타다. 광고회사에 있는 필자의 친구는 박찬호의 전성기 시절 그와 박세리를 '단군 이래 최고의 상품'이라 잘라 말했다. (박세리는 1999년 '시민권 파문'으로 인해 단숨에 몰락했고 이미 찍어 놨던 삼성TV광고까지 폐기처분해야 했다.) 물론 그 말고도 해외무대에 진출에 성공한 선수들이 있다. 선동렬, 박지성, 이승엽도 있다. 그러나 그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다. 경기를 지배하는 능력, 혼자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소수자라는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에서 뿐 아니라 라커룸과 클럽하우스에서도 동료들의 존경을 받고 팀의 리더가 됐던 카리스마의 인물이었다.
  
  또한 그는 한국선수 중 선수생활을 하는 국가나 지역사회에서 열광적 환영을 받았던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우리가 툭하면 떠들어 대는 '국위선양'에서도 그는 순도 100%였다. 지금의 우리가 오히려 잘 몰라서 그렇지, 외국에서 '제대로' 알아줬던 축구의 차범근(독일 및 유럽), 핸드볼의 윤경신(독일 및 유럽), 배드민턴의 박주봉(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과 함께 외국인으로 하여금 '코리아'에 대해 호감을 갖게 한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의미 있는 드라마
  
  스포츠는 허구다. 나는 스포츠는 종교이면서 마약이고, 상징이며 조작일 뿐 아니라 혼자만의 자위행위라는 의견에 완전무결하게 동감한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돈이 아니라 명예를 위해, 성취를 위해, 내가 아닌 남을 위해 땀 흘리는 운동선수들을 존경한다.
  
  나도 한때 그가 '돈맛'에 넘어가지 않았나 했다. 1998년 아시안게임에 금메달 따고 병역면제 받을 때도 조금은 얄미웠다. 그러나 아시안게임이면 아시안게임, 올림픽이면 올림픽, 거기에 WBC야구대회까지 지금도 부르면 달려오는 그를 다시 보게 됐다. 오히려 국내선수들은 요리 빠지고 조리 빠지려 갖은 머리를 쓰며 이 핑계, 저 핑계 찾아 헤매지 않는가.
  
  그는 먹튀 맞다. 그러나 이제 먹튀의 기억을 뒤로 하고 노병이 되어 마지막 명예회복을 위해 패전처리도 마다 않고 있다. 야구 열성팬도 아니고 그의 팬은 더더구나 아니지만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지 그가 잘 하길 바란다. 왜? 그냥 기분이 좋으니까. 그가 이기면 마흔 셋 나도 이길 것 같다. 마지막 불꽃을 다 태우고 멋지게 재기하기 바란다. 그것도 역전승으로. 이 얼마나 기분 좋은, 뿌듯한 자위인가.

-네이버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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